조선 시대의 재미있는 문화를 길게 작성해왔는데 이번이 조선 시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편은 조선 시대의 고양이에 대해 작성해 보겠습니다.

반려동물은 현대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집니다. 사료와 병원, 미용실이 있어야 가능한 문화니까요. 그런데 조선의 기록을 들춰보면 뜻밖의 장면들이 나타납니다. 고양이를 무릎에 올리고 정사를 논한 임금이 있었고, 평생 고양이만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이'가 된 화가가 있었으며, 자기 집 고양이를 두고 신랄한 시를 쓴 실학자도 있었습니다. 500년 전 이 땅의 사람과 동물이 맺었던 관계를 따라가 봅니다.
1. 궁궐에도 고양이가 살았다
조선 왕실의 반려동물 중 가장 유명한 존재는 단연 숙종의 고양이입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숙종은 궁궐에서 만난 고양이를 거두어 곁에 두었고, 이름을 지어 부르며 무척 아꼈다고 합니다. 정사를 볼 때도 고양이를 옆에 두었고, 밥상의 고기를 직접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숙종이 세상을 떠난 뒤 이 고양이가 먹이를 입에 대지 않고 슬퍼하다 따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일화는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당대 문인의 시문에 전하는 이야기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애정 어린 각색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왕실에는 고양이 말고도 다양한 동물이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일본이나 유구에서 원숭이와 앵무새 같은 진귀한 동물을 진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동물들이 궁에 들어올 때마다 신하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반대였죠.
여기에는 유교적 이유가 있습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 즉 물건을 가지고 놀다 보면 뜻을 잃는다는 경계입니다. 임금이 짐승에게 마음을 쏟으면 백성을 살피는 일에 소홀해진다는 논리였고, 진귀한 동물을 먹이고 관리하는 비용 또한 결국 백성의 부담이라는 현실적 지적도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들은 동물을 좋아하면서도 그 마음을 드러내는 데 꽤 조심스러웠습니다. 왕이 고양이를 아끼는 일조차 정치적 논쟁거리가 될 수 있었던 시대였던 겁니다.
2. 별명이 '변고양이'였던 화가
조선의 반려동물을 가장 생생하게 만나는 방법은 그림입니다.
18세기 화가 변상벽은 고양이 그림의 일인자였습니다. 얼마나 잘 그렸는지 사람들이 그를 '변고양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화가의 이름 뒤에 그가 그린 동물 이름이 붙어 별명이 되는 일, 흔치 않죠. 그의 대표작 「묘작도」에는 나무를 타고 오르던 고양이가 고개를 홱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 눈빛과 몸의 긴장을 보면, 이 사람이 고양이를 얼마나 오래 관찰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초상화가로도 인정받아 임금의 어진 제작에 참여할 만큼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개를 그린 그림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 전기 화가 이암의 「모견도」는 어미 개가 엎드려 있고 강아지 세 마리가 품을 파고드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검둥이, 누렁이, 흰둥이가 어미에게 기대어 잠들고 젖을 찾는 모습이 어찌나 편안한지, 그림 앞에서 저절로 표정이 풀어집니다. 18세기 김두량이 그린 개 그림도 유명한데, 뒷다리를 들어 몸을 벅벅 긁는 개를 한 마리 그려놓았습니다. 위엄도 상징도 없이, 그냥 가려워서 긁는 개입니다.
이런 그림들이 알려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조선 사람들은 이 동물들을 가까이서 아주 오래 지켜봤다는 것입니다. 애정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관찰입니다.
3. 쥐 잡으라고 길렀더니 — 정약용의 고양이
그렇다고 조선의 동물이 오늘날처럼 순전한 '반려'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으라고, 개는 집을 지키라고 두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실용과 애정이 뒤섞여 있었던 셈이죠.
이 미묘한 관계를 가장 재미있게 보여주는 글이 정약용의 시 「이노행」입니다. 제목은 '고양이 노래'쯤 되는데, 내용은 통쾌할 정도로 신랄합니다. 쥐를 잡으라고 길렀더니 이놈이 쥐는 잡지 않고 오히려 부엌에 들어가 고기며 생선을 훔쳐 먹는다는 겁니다. 쥐들은 고양이가 제 편이 된 것을 알고 더 기고만장해집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고양이 험담이 아닙니다. 백성을 지켜야 할 관리가 도리어 백성의 것을 빼앗는 현실을 겨눈 풍자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비유가 성립하려면 독자들이 이미 고양이라는 동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양이가 얼마나 능청스럽고 제멋대로인 존재인지 모두가 겪어봤기에 이 시가 웃기고 아픈 겁니다.
먹이를 나누어 준 임금, 고양이만 평생 그린 화가, 도둑고양이를 나무라는 척하며 세상을 비판한 학자. 조선 사람들이 동물과 맺은 관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 발치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도, 알고 보면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한 장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