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과거 여행 8편입니다.
이번엔 조선 시대에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계산했을지, 약속 시간은 어떻게 맞춰 나갔을지 알아보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현대인의 일상입니다. 손목시계와 휴대전화 덕분에 우리는 언제든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계가 없던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확인했을까요? 중요한 약속은 어떻게 지켰고, 언제 일을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었을까요?

놀랍게도 조선 시대에는 시간을 측정하고 알리는 다양한 장치와 제도가 있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는 지혜와 뛰어난 과학기술이 더해져, 당시 사람들도 질서 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시계가 없던 시대의 하루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해와 물로 시간을 측정한 조선의 과학
조선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도구가 해시계였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오목한 그릇 모양의 해시계로, 햇빛에 생기는 그림자의 위치를 이용해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표면에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의 움직임을 고려한 선이 새겨져 있어 비교적 정확하게 시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앙부일구는 궁궐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도 설치되어 백성들이 시간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해시계는 밤이나 흐린 날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물시계, 즉 자격루(自擊漏)입니다.
자격루는 물이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원리를 이용한 장치였습니다.
물이 차오르면 내부의 장치가 움직이며 종이나 북을 자동으로 울려 시간을 알렸습니다.
사람이 직접 시간을 외치지 않아도 기계가 스스로 시간을 알려 주는 자동 장치였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과학기술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천문학과 시간 측정 기술을 중요하게 여겼고, 장영실을 비롯한 기술자들이 이러한 발명품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 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조선 시대 한양에서는 시간을 개인만 아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함께 공유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보신각의 종이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면 파루(罷漏)라는 종을 울려 성문을 열고 하루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반대로 밤이 되면 인정(人定)이라는 종을 쳐 성문을 닫고 야간 통행금지가 시작됨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들으며 시장을 열고, 관청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판단했습니다.
오늘날 사이렌이나 방송이 시간을 알려 주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조선 시대의 하루는 지금처럼 오전 9시, 오후 3시처럼 숫자로 구분하기보다 12간지를 이용한 시간 체계를 사용했습니다.
자시, 축시, 인시, 묘시처럼 하루를 열두 구간으로 나누었고, 각 시간은 약 두 시간 정도에 해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시는 오늘날 밤 11시부터 새벽 1시 무렵을 의미했고, 오시는 낮 11시부터 오후 1시 정도를 가리켰습니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관청 업무는 물론 농사와 상업 활동에도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3. 시계가 없어도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오늘날처럼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생활했습니다.
농부들은 해가 떠오르는 시각과 해가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하루 일과를 정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지는 만큼, 생활 리듬도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조절했습니다.
상인들은 장이 열리는 시간과 닫히는 시간을 경험으로 익혔고, 관리들은 종소리와 관청의 규칙에 맞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사람과 만날 때에는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해질 무렵", "파루가 울리기 전"처럼 자연과 도시의 신호를 기준으로 약속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시간은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자연과 가까운 개념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시간 측정 기술이 당시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격루나 계절 변화까지 고려한 앙부일구는 과학과 기술이 결합된 뛰어난 발명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이 단순히 농업 중심 사회가 아니라 천문학과 기계 기술도 꾸준히 발전시켰던 나라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해의 움직임과 종소리, 물의 흐름을 이용해 하루를 계획했습니다.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 시계는 없었지만, 자연과 과학을 활용해 질서 있는 생활을 이어 갔던 것입니다.
앙부일구와 자격루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조선의 과학기술과 생활문화를 상징하는 발명품이었습니다. 또한 보신각의 종소리는 도시 전체의 시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신호였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 잠시 수백 년 전 조선 사람들의 하루를 떠올려 보세요. 해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갔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도 조선의 과학과 생활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